같은 색 블루블랙, 굵기가 만든 시각 차이
손편지는 같은 문장을 써도 펜의 굵기에 따라 인상이 달라진다. 가는 펜은 글자가 또렷하고 정교해 보이는 반면, 굵은 펜은 선이 부드럽고 글씨의 존재감이 커진다. 막연히 알고 있던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0.28mm부터 1.0mm까지 같은 문장을 직접 써봤다. 다섯 자루 모두 잉크색을 블루블랙으로 맞춰, 색의 인상보다 굵기 자체가 만드는 차이에 집중했다.
이번 비교는 어느 제품이 더 좋다고 순위를 매기기 위한 시험이 아니고. 같은 블루블랙 잉크로 같은 문장을 썼을 때, 가는 선은 정교함을 얼마나 살리고 굵은 선은 문장에 얼마나 강한 목소리를 더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용지와 문장을 통일한 것도 굵기 이외의 변수를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해서다.
실험에 사용한 블루블랙 젤펜 5종을 굵기 순서대로 놓은 모습
(0.28mm,0.38mm,0.5mm,0.7mm,1.0mm)
어떻게 비교했나 ?
펜 0.28·0.38·0.5·0.7·1.0mm 다섯 굵기를 한 줄의 비교군으로 놓았다. 잉크색은 모두 블루블랙으로 통일해 색상 차이가 판독에 끼치는 영향을 줄였다.
용지 프랑스산 클레르퐁텐 Uni / Plain을 사용했다. 표면이 매끈한 편이라 펜촉의 차이를 비교하기 좋았다. 다른 일반 용지에서도 굵기에 따른 큰 흐름은 비슷하겠지만, 거친 종이에서는 가는 펜의 긁힘이 더 커지고 흡수성이 높은 종이에서는 굵은 선의 번짐이 늘 수 있다.
방법 “테스트 글소담 반갑습니다”라는 같은 문장을 비슷한 크기와 속도로 반복해 썼다. 선의 또렷함, 획 사이의 빈 공간, 글자 무게, 필기할 때의 마찰감과 미끄러움을 눈과 손으로 비교했다.
필압 일반적인 속도로 글씨를 쓸 때 펜촉이 종이에 가하는 힘은 약 1.4~1.5N, 무게감으로 환산하면 약 143~153gf로 보고된다. 빠르게 쓰거나 글씨가 커지면 약 1.7N까지 높아질 수 있다.
글소담 샘플도 자연스러운 손글씨를 재현하기 위해 약 1.5N 전후의 감각에 가깝도록 필압을 조정했다. 다만 이번 실험은 하중 센서로 실시간 계측한 시험이 아니라 이 범위를 목표로 한 감각 조정이다.
직접 쓴 글씨를 나란히 보면
스캔 이미지를 보면 숫자만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던 차이가 바로 보인다. 0.28mm는 획 사이의 빈 공간이 가장 잘 살아 있고, 0.38mm와 0.5mm를 지나며 글씨가 점차 단단하고 진해진다.
0.7mm와 1.0mm에서는 각각의 획보다 글자 전체의 덩어리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모든 선이 블루블랙이므로, 아래 비교에서 진해 보이는 정도는 색상보다 선이 차지하는 면적과 잉크량의 영향이 크다.
0.28mm부터 1.0mm까지 같은 문장을 쓴 깨끗한 스캔 비교
캐논 LiDE200 300 dpi 스캔 원본
색을 통일하니 굵기의 역할이 더 잘 보였다
가는 펜은 자음과 모음의 경계를 또렷하게 남긴다. 특히 ‘ㅁ·ㅂ·ㅎ’처럼 안쪽 공간이 있는 글자, 작은 받침, 획이 가까이 붙는 부분에서 선예도가 높다. 반대로 굵은 펜은 빈 공간을 조금씩 메우면서 글자의 검은 면적을 키운다. 같은 크기의 글씨라도 더 진하고 크게 보이는 이유다.
이 차이는 읽는 속도에도 영향을 준다. 작은 글씨로 정보량이 많은 본문은 가는 선이 편하고, 짧은 인사나 이름처럼 한 번에 인식되어야 하는 말은 굵은 선이 유리하다. 즉 펜 굵기는 단순히 ‘진하다, 연하다’의 문제가 아니라 글자 안의 공간과 시선의 우선순위를 조절하는 도구다.
앞면의 잉크, 뒷면의 압흔
잉크색을 모두 블루블랙으로 통일했기 때문에 스캔에서 보이는 농도 차이를 색상 차이로 돌릴 필요가 없다. 선이 차지하는 면적, 가장자리의 퍼짐, 종이 섬유 사이로 스며든 흔적을 함께 보면 굵기별 잉크 배출과 침투 양상을 눈으로 비교할 수 있다. 이것은 흡수량을 계량한 시험은 아니지만, 같은 용지와 색상에서 상대적인 차이를 읽는 관찰 자료로는 충분하다.
가는 펜은 필압의 총힘이 더 큰 것이 아니라, 비슷한 힘이 더 작은 접촉 면적에 모이기 때문에 종이에 가해지는 국부 압력이 커진다. 그 결과 0.28mm와 0.38mm는 용지 뒷면에 좁고 선명한 압흔을 남기기 쉽다.
잉크가 마른 뒤에도 손끝으로 느껴지는 이 미세한 요철은 일반 프린터가 잉크나 토너만 올려서는 재현하기 어려운, 실제 손글씨만의 ‘손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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