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제작 워크플로우와 통계적 공정 관리
손글씨체 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필요한 물리적 작업은 A4 한 장을 채우는 일이고, 그 뒤는 대부분 자동화되어 있습니다. 사람의 판단이 개입하는 지점을 마지막 예외 처리로 밀어 둔 구조입니다.
· 템플릿 A4 출력 — 배경에 글자별 스캔 가이드 격자, 상단에 표준 획 DB 가이드를 인쇄합니다.
· 필기 — 격자 안에 284자를 기입합니다.
· 1200dpi 스캔 — 용지의 QR 코드로 격자 원점과 스케일을 확정합니다.
· 글자 단위 분리 — 칸 단위로 잘라 글자별 개별 파일(티어에 따라 한글 114~550개)을 생성합니다.
· 표준 획 DB 대조 — 형태와 획순의 유사도를 계산해 99% 기준으로 판정하고 획순 오류를 교정합니다.
· 1차 Stroke 분석 — 프로그램이 획을 자동 추출하고, 판정에서 걸린 글자만 수동 편집합니다.
· 글꼴 저장 — 자소 인덱스와 획 좌표를 담은 전용 포맷(*.sspfnt)으로 저장합니다.
8.1 세션 설계와 드리프트 관리
필기 세션 자체의 품질 관리도 필요합니다. 글자당 소요 시간을 10초로 잡으면 순수 필기 시간은 다음과 같으며, 세션 길이가 길어질수록 획 굵기와 기울기의 계통 변동, 즉 드리프트가 누적됩니다. 계측 용어로 말하면 필기자의 피로는 저주파 외란이고, 세션 후반의 표본은 그 외란이 실린 채 기록됩니다.
표 . 템플릿 규모별 세션 설계 (글자당 10초 가정, 검수·재작성 시간 제외)
기준자는 모든 세션에서 반복 기입하는 소수의 고정 글자군입니다. 계측에서 표준 시료를 재측정해 영점 이동을 확인하는 절차와 같은 역할을 하며, 관리 대상 변수는 획 굵기(평균과 변동계수), 기울기(세로 기준선에 대한 각도), 글자 크기(폭과 높이), 기준선 이탈(격자 중심 좌표 편차)입니다.
세션을 부분군으로 삼아 이 지표들을 기록하면 X̄–R 관리도로 관리 한계를 설정할 수 있고,[1] 한 세션의 평균이 한계를 벗어나면 그 세션 분량은 폐기하고 재기입하는 것이 이후 보정보다 저렴합니다. 불량을 하류에서 고치기보다 상류에서 검출해 버리는, 공정 관리의 일반 원칙 그대로입니다.
세션 내 글자 배치 순서는 고정하지 말고 무작위화하거나 라틴 방격으로 배치하는 편이 낫습니다.[2] 순서를 고정하면 세션 후반 글자가 항상 같은 글자군이 되어, 피로에 의한 변동이 특정 글자의 고유 특성으로 굳어 버립니다.
9. 재료 조건 — 번짐과 출력성의 동시 최적화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한 것이 재료입니다. 스캔 후 획을 자동 추출하는 방식이므로 재료 조건이 인식 품질을 직접 좌우합니다. 잉크가 번지면 획 경계가 무너지고, 선이 끊기면 한 획이 두 획으로 분리 인식됩니다. 용지 5종과 펜 2종(굵기 2종)의 조합을 시험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표 . 번짐 방지 관점의 용지·펜 조합 평가 (S 완벽 / A 우수 / B 양호 / C 보통)
글소담 - 샘플 템플릿 스캔원본 1 글소담 - 샘플 템플릿 스캔원본 2
고해상도 스캔을 하면, 눈에 잘 보이지 않았던, 잉크 번짐이 보이게 되어, 스캔 원본에 대해서 사전 이미징 작업 (Pre Processing) 을 반드시 해야 된다. 위의 사진 경우, 번짐이 가장 덜한 클레르퐁텐 용지에서도 잉크 번짐 현상이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최종 조건은 클레르퐁텐 90g 용지와 유니볼 시그노 0.38mm 수성펜입니다. 클레르퐁텐은 잉크를 표면에 빠르게 고정시키는 코팅 덕분에 모든 조합에서 번짐이 없었고, 시그노 0.38mm는 획이 끊어지지 않고 연속되었습니다. 유성 제트스트림 0.5mm는 번짐에는 강하지만 획이 끊기는 현상이 있어 획 추출에 불리했습니다.
고평량 코팅지는 번짐에는 유리하지만 레이저 출력이 어려워 템플릿 인쇄 단계에서 걸립니다. 즉 용지 선택은 단일 목적 최적화가 아니라 번짐과 출력성이라는 두 제약을 동시에 만족해야 하는 문제이며, 한 축만 최적화한 후보는 다른 축에서 탈락합니다.
한 걸음만 더
손글씨 폰트는 소프트웨어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같은 사람이 같은 펜으로 써도 세션 후반에는 손에 힘이 들어가 획이 굵어지고, 기울기가 조금씩 바뀔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특정 글자에만 몰리면 시스템은 피로로 생긴 흔적을 그 사람의 고유한 글씨 특징으로 잘못 학습하게 됩니다.
기준자를 중간에 다시 쓰고 세션 순서를 섞는 것은 이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스캔 후 보정으로 모든 차이를 지우려 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개성까지 사라질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균일한 조건에서 표본을 얻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재료 시험도 같은 맥락입니다. 번지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출력 가능성·획의 연속성·스캔 인식성을 함께 만족해야 합니다.
결국 제작 워크플로우의 목표는 사람을 완전히 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판단이 꼭 필요한 곳만 남기는 것입니다. 반복 가능한 분리·대조·추출은 자동화하고, 개성이 무너지거나 획순이 달라지는 예외만 사람이 확인할 때 품질과 생산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습니다.
[1]슈하트(Shewhart) 관리도 계열의 X̄–R 관리도를 말한다. 세션을 부분군으로 잡아 기준자 지표의 평균(X̄)과 범위(R)를 타점하고, 관리 한계(통상 ±3σ)를 벗어나면 공정 이상으로 판정한다. 통계적 공정 관리(SPC)의 표준 도구이며, 여기서는 필기 세션이라는 "공정"의 계통 변동 감시에 쓴다.
[2]실험계획법(design of experiments)의 무작위화·블로킹 원리다. 배치 순서를 고정하면 세션 후반의 피로 효과가 특정 글자군과 교락(confounding)되어, 피로에 의한 변동이 그 글자들의 고유 특성으로 오인된다. 무작위화 또는 라틴 방격(Latin square) 배치는 이 교락을 끊는 고전적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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