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소 분해와 동치류 — 190자의 유도
여기서 한글의 구조적 이점이 등장합니다. 한자는 글자마다 형태가 독립적이라 하나하나 그려야 합니다. 그런데 한글은 초성·중성·종성이라는 부품의 조합이라, 부품을 확보하면 조립이 됩니다.
이 성질을 조금 형식적으로 적으면 문제의 크기가 선명해집니다. 음절 하나를 초성·중성·종성의 순서쌍 s = (i, v, f)로 보면, 원칙적으로 필요한 표본 수는 곱집합의 크기 |I| × |V| × |F| = 11,172입니다. 자소 분해의 본질은 이 부담을 합집합 수준, 즉 |I| + |V| + |F| = 68에 가까운 규모로 낮추는 데 있습니다. 다만 자소의 실제 모양은 주변 문맥에 의존하므로 68자로는 부족하고, 문맥의 가짓수를 유한 개의 동치류로 축약하는 중간 지점이 필요합니다. 그 답이 190입니다.
글소담의 손글씨 시스템은 사람에게 11,172자가 아니라 190자를 받습니다. 그 190자를 자소 단위로 분해해 초성 조각, 중성 조각, 종성 조각의 테이블을 만들고, 나머지 10,982자를 그 조각들의 조합으로 생성합니다.
190이라는 숫자는 이렇게 나옵니다. 초성 19개는 그대로 19입니다. 중성 21개는 초성의 형태를 바꾸는 방식에 따라 5개 그룹으로 묶입니다.[1] 여기에 받침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가 글자의 세로 비율을 다르게 만들므로 2를 곱합니다. 19 × 5 × 2 = 190입니다.
왜 중성을 5개로 묶을 수 있느냐면, 사람이 글씨를 쓸 때 초성의 모양이 뒤에 오는 모음에 따라 달라지는 방식이 딱 다섯 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가'처럼 모음이 오른쪽에 붙을 때, '고'처럼 아래에 붙을 때, '구'처럼 아래로 더 깊이 내려갈 때, '과'처럼 아래와 오른쪽에 모두 붙을 때, '궈'처럼 그 복합형이 더 깊어질 때입니다.
같은 그룹 안에서는 초성의 변형이 사실상 동일하므로, 그룹 대표 한 자만 받으면 나머지는 계산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동치류의 언어로 말하면, 대표원의 변형 규칙을 동치류 전체가 재사용하는 구조입니다.
중성 5그룹 분류
직접 필기 190자와 합성 생성 10,982자의 구성은 다음과 같이 갈립니다.
직접 필기 190자와 합성 생성 10,982자의 구성
이 그룹 구조를 전통적 조합형 글꼴의 벌 체계로 정리하면 표와 같이 됩니다.[3] 초성은 받침 유무와 중성 그룹에 따라 8벌, 중성은 결합하는 자음의 종류와 받침 유무에 따라 4벌, 종성은 앞에 오는 중성에 따라 4벌로 나뉩니다.
초성 8벌·중성 4벌·종성 4벌의 벌 체계
표 서 눈여겨볼 부분은 받침 축입니다. 받침이 없을 때 다섯이던 초성 벌이 받침이 있을 때는 셋으로 병합됩니다. ㅗ·ㅛ·ㅡ 계열과 ㅜ·ㅠ 계열이 한 벌(7벌)로, ㅘ 계열과 ㅝ 계열이 한 벌(8벌)로 합쳐집니다.
받침이 세로 공간을 차지하면서 초성이 눌리고, 하강 폭의 차이로 갈리던 변형 구분이 소거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동치 관계가 문맥에 따라 더 거칠어지는 셈입니다.
실제 필기 템플릿은 여기에 영문·숫자·기호 94자를 더해 총 284자입니다. A4 한 장에 격자로 인쇄된 이 284칸을 채우는 것이 손글씨체 제작의 전부입니다. 참고로 네이버 나눔손글씨 공모전의 템플릿은 총 246자입니다.[1] 한글 부분을 152자로 잡을지 190자로 잡을지의 차이인데, 이 차이가 그대로 합성 정확도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상세 비교는 10절에서 다룹니다.
한 걸음만 더
190자는 임의로 정한 편의상의 숫자가 아닙니다. 초성이 모음의 오른쪽에 놓이는지, 아래에 놓이는지, 받침 때문에 위쪽 공간이 얼마나 눌리는지를 기준으로 같은 변형을 공유하는 글자끼리 묶었을 때 얻어지는 대표 표본의 수입니다. 다시 말해 많이 쓰는 글자 190개를 고른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결합 상황을 빠짐없이 보여 주는 190개를 고른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의 ㄱ과 ‘고’의 ㄱ은 같은 자음이지만 실제 필기에서는 폭과 기울기, 다음 획을 맞이하는 여백이 달라집니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하나의 ㄱ만 모든 글자에 쓰면 조립은 가능해도 글자마다 호흡이 달라 보입니다. 중성 5그룹과 받침 유무를 함께 보는 이유는 이 미세한 공간 감각을 표본 안에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템플릿을 채울 때는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만큼 칸마다 평소의 필기 습관을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90칸은 시험지가 아니라, 한 사람의 글씨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기록하는 측정표에 가깝습니다.
[1]네이버 나눔손글씨 공모전 작성 양식 기준. 총 246자(한글 152자 + 영문·숫자·기호 94자)로, 한글 부분은 초성 19자 × 대표 조합 8블록 구조를 취한다. 상세 비교는 10절 참조.
[2]벌(set)은 같은 자소가 문맥에 따라 취하는 형태 부류를 뜻하는 전통적 조합형 글꼴 용어다. 벌 수가 곧 문맥 동치류의 개수라는 점에서, 본문의 그룹 축약은 벌식 설계의 연장선에 있다. 상세 구성은 표 4 참조.
[3]형식적으로 쓰면, 중성 집합 V(|V| = 21) 위에 "두 중성이 초성에 유발하는 형태 변형 함수가 동일하다"라는 동치 관계 ~를 정의할 때, 몫집합 V/~의 크기가 5라는 관찰이다. 직접 필기 표본은 각 동치류의 대표원만 확보하면 되고, 동치류 내부의 나머지 원소는 대표원의 변형 규칙을 재사용한다. 표본 수를 |V|에서 |V/~|로 줄이는 이 축약이 190자 템플릿의 수학적 골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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