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실험 자료를 반영한 보완 논의
중국산 Hopk ZB69 0.6mm가 글소담의 목표 굵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평가된 현장 사례는 제조국만으로 필기 적합성을 예측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해당 펜의 재시동 불량과 홀더 적합성 문제도 관찰되었으므로, 산업 비교는 제조국 일반화보다 설계·공정·개별 제품 검증에 초점을 맞춘다.
국내 문구점에서 불투명한 초정밀 화이트 젤펜을 찾기 어렵다고 해서 국내에 백색 잉크 기술이 없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국가별 기술 역량을 비교하려면 제품 목록, 실제 제조국, 부품 조달, 배합 개발 비용, 수요를 구분해야 한다.
국산 제품의 정의부터 정리
한국 브랜드 제품이라도 잉크나 완제품을 해외에서 조달할 수 있다.
한국 공장에서 조립하더라도 볼·팁·잉크는 외부 협력사의 공급품일 수 있다. ‘국산’은 브랜드 국적, 제조국, 핵심 소재 국산화 등 여러 의미가 있으므로 조사표에서 정의를 명시해야 한다.
모나미의 공식 제품군과 사업보고서에는 볼펜, 마카 등 다양한 필기구가 등장하지만, 조사한 자료만으로 0.6mm 안팎의 불투명 백색 젤펜이 국내에서 절대 생산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국내 중소업체·OEM 생산도 따로 확인해야 한다.
기술 장벽은 복합적이다
백색 젤 잉크를 상업화하려면 백색 안료의 분산과 항침강 성능을 확보하고 작은 볼·소켓을 안정적으로 가공해야 한다.
펜심의 밀봉, 캡 재료, 저장 기간, 온도 변화, 연속 필기 신뢰성 역시 같은 시스템의 일부다. 원료를 구입하는 것만으로 제품 개발이 끝나지 않는다.
초기 연구비와 수백~수천 회의 평가가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정확한 설비비·개발비·성공 확률은 제조사 내부 정보가 없으므로 임의 수치로 적을 수 없다.
시장 수요와 규모의 경제
검정·파랑 펜은 업무용 반복 수요가 크지만 불투명 백색 젤펜은 검정 종이 필기, 미술 하이라이트, 캘리그래피 등 상대적으로 특수한 사용처를 가진다.
제품군 자체의 수요가 적으면 전용 제형 개발과 품질검사의 비용을 회수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는 가능한 산업적 가설이지 국내 기업이 생산하지 않는 이유를 실제 인터뷰로 확인한 결과는 아니다. 제조사 문의, 유통 판매량, 수입 통계와 가격 구조를 확인해야 인과 관계를 논할 수 있다.
일본·중국과 비교할 때의 주의점
사쿠라·미쓰비시 같은 일본 제조사는 젤 잉크 기술의 역사와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한다.
중국산 제품은 가격이 낮아도 생산 주체와 실제 원료 정보가 불명확한 사례가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중국산이라는 이유만으로 품질이 낮다고 판단하는 것은 편견이다.
국내 생산 가능성을 논하려면 기술 보유 여부뿐 아니라 원하는 내수 시장의 가격대와 공급 수량, 특허 실시 가능성, 생산 공정의 재현성을 함께 평가해야 한다. 정책적 주장보다는 확인 가능한 산업 자료를 남기는 것이 목표다.
국내 생산의 실증 조사 방법
국내 제품이 없다는 부정 명제는 증명하기 어렵다. 공개된 온라인 목록에서 찾지 못했다는 사실은 ‘조사 범위에서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론까지만 허용한다.
특허·사업보고서·제조사 카탈로그를 살펴보고 업계에 직접 문의할 때 제조국 표기와 실제 생산 설비의 위치를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산성 검토에는 최소주문량과 품질검사 비용이 함께 들어간다. 백색 젤펜은 작은 시장이라고 추정하더라도 실제 수요는 산업용 표시, 미술, 인쇄 후 가필, 검정 포장재 기록 등으로 나뉠 수 있다.
수요 조사를 하지 않고 판매량이 낮다고 가정하면 유망한 세부 시장을 놓칠 수 있다.
국산화 프로젝트라면 안료 자체보다 팁과 잉크의 조합이 중요한 병목일 수도 있다.
모든 부품을 국내에서 개발할 것인지, 기존 정밀 볼팁을 구매하고 잉크만 최적화할 것인지에 따라 필요한 설비와 인력, 개발기간이 달라진다. 제품 기획 단계에서 핵심 개발 영역과 외부 조달 영역을 분리해야 현실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제품 단종과 생산지 이전도 구분해야 한다.
어떤 모델이 사라졌더라도 소재 기술이 사라진 것은 아니며, 해외 브랜드라도 일부 제품은 중국 공장에서 제조될 수 있다.
국가별 기술 수준을 단정하는 비교보다 공개된 생산 체계와 제품 성능의 관계를 추적하는 것이 학술적으로 건전하다.
마치면서 - 흰색 한 줄에 담긴 기술과 작은 바람
화이트펜을 처음 사용했을 때는 단순히 흰색 잉크가 들어 있는 볼펜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제조사의 제품을 직접 비교하면서, 흰색으로 가느다란 글씨를 안정적으로 쓰는 일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기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화이트 잉크는 검정이나 파랑 잉크와 달리 어두운 종이 위에서도 충분한 은폐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백색 안료의 분산, 점도, 잉크 토출량, 건조 특성을 동시에 조절해야 하므로 일반적인 잉크보다 제조와 품질관리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특수 화이트 젤펜의 시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이번에 조사한 범위에서 3~4개 주요 업체의 제품군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그중 사쿠라 젤리롤이 대표적입니다. 실제로 사용해 보아도 품질의 균일성과 필기 안정성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습니다. 젤리롤 화이트는 0.5mm, 0.8mm, 1.0mm로 판매되는데, 작은 한글을 쓰기에는 0.5mm가 다소 가늘고 0.8mm는 굵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실험을 시작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그 중간에 해당하는 적절한 굵기의 화이트펜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중국산 제품은 조사 과정에서 약 10개 업체 또는 브랜드의 제품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제품에 따라 필기 품질의 차이가 상당했고, 일부는 정확한 제조사를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구할수 있는 20개 제품을 모두 구매해서, 테스트한 결과, 그 중에서도 Hopk ZB69 0.6mm처럼 실제 사용 목적에 적합한 제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제조국보다 중요한 것은 결국 개별 제품의 성능과 품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하나의 과제는 화이트펜 특유의 건조 문제였습니다. 일정 시간 사용을 멈췄다가 다시 쓰면 처음 몇 글자, 경우에 따라 3~4글자까지 잉크가 고르게 나오지 않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펜 자체의 개선뿐 아니라 사용하는 장비에서도 해결책을 찾아야 할 문제입니다.
글소담 시스템에서는 앞으로는 본격적인 글씨를 쓰기 전에 별도의 시험 영역에 몇 글자를 먼저 써서 잉크 흐름을 안정화하는 기능을 추가할 생각입니다.
재료의 한계를 소프트웨어와 기계적인 제어로 보완하는 것도 공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필기구 산업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를 함께 남기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구기업 모나미도 올해 상장폐지 위기를 겪을 만큼 국내 문구산업의 환경이 녹록지 않습니다.
디지털화와 저가 수입 제품의 확대 속에서 새로운 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졌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국내 기업들이 오랫동안 쌓아 온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작지만 특별한 용도의 필기구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주었으면 합니다.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품질이 뛰어나고, 가늘면서도 잘 마르지 않는 국산 화이트 젤펜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이번 연재가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작은 필기구 하나에도 얼마나 많은 재료과학과 화학공학 기술이 담겨 있는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참고 문헌 및 확인 자료
[R14] Monami official product information. https://www.monami.com/
[R15] Monami corporate periodic financial disclosure, KRX KIND, 2025. https://kind.krx.co.kr/external/2025/03/21/000609/20250321002424/11011.htm
[R6] Sakura of America, Gelly Roll White technical product description. https://www.sakuraofamerica.com/product/gelly-roll-white/
이전 목차
163.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국산 백색 젤펜은 왜 찾기 어려울까 ? #9 / 최종 )
162.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종이 표면은 잉크의 두 번째 재료 #8)
161.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왜 이렇게 빠르게 마르고 막히는가 ? #7)
160.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수정액과 젤 잉크, 같은 흰색 다른 화학 #6)
159.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젤 잉크의 전단박화와 볼펜촉 유체역학 #5)
158.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TiO₂는 어떻게 검은 종이를 하얗게 만들까 ? #4)
157.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0.5mm와 1.0mm 사이, 최적의 펜굵기는 ? #3)
156.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수정액에서 젤펜으로, 흰 필기구의 탄생 #2)
155.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흰 글씨를 쓰기까지, 스무 번이 넘는 실험의 기록 #1)
154.사례47. 빼빼로데이 - #6.호텔·게스트하우스 시즌 이벤트, 작은 비용으로 만드는 환영 메시지(최종)
153.사례47. 빼빼로데이 - #5.학생마다 다른 응원 문구, 작은 학원에서 가능한 이벤트
152.사례47. 빼빼로데이 - #4.직원 100명에게 같은 선물, 그러나 각자 다른 손글씨 메시지
151.사례47. 빼빼로데이 - #3.11월 11일, 단골 고객에게 전하는 작지만 특별한 감사
150.사례47. 빼빼로데이 - #2.카페 이벤트, 단골이 기억하는 작은 선물의 비밀
149.사례47. 빼빼로데이 - #1.과자보다 오래 남는 한 장의 손글씨 카드
148.사례46. 펫미용실 - #6.좋은 아이디어도 직원이 쓰지 않으면 서비스가 아니다(최종)
147.사례46. 펫미용실 - #5.단골이 되는 순간, 카드는 ‘기억의 기록’이 된다
146.사례46. 펫미용실 - #4.노령견과 예민한 아이에게 프리미엄은 ‘천천히’다
145.사례46. 펫미용실 - #3.첫 미용은 잘 자르는 것보다 ‘좋게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
144.사례46. 펫미용실 - #2.미용이 끝난 뒤, ‘예쁘게 됐어요’에서 한 걸음 더
143.사례46. 펫미용실 - #1.처음 온 아이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요?
142.사례45. 팝업스토어 - #6.대기번호 하나로팝업 이벤트 전체를 연결한다면(최종)
141.사례45. 팝업스토어 - #5.마지막 날, 3,000개의 번호가다시 살아난다면
140.사례45. 팝업스토어 - #4.대기표를 왜 집까지 가져가게 될까?매일 당첨번호를 발표한다면
139.사례45. 팝업스토어 - #3.Excel 한 파일이면3,000개의 번호도 어렵지 않습니다
138.사례45. 팝업스토어 - #2.문장은 같아도 3,000장이모두 다른 카드가 되는 이유
138.사례45. 팝업스토어 - #1.대기번호표, 꼭 버려지는 종이여야 할까요?
137.사례44. 유치원 - #7.한 반 24명 월간 운영 예시 (최종편)
136.사례44. 유치원 - #6.3월 한 장이 12월에는 ‘우리 아이의 1년’이 됩니다
135.사례44. 유치원 - #5.엑셀 24줄만 있으면 됩니다: 컴퓨터 초보 선생님도 가능한 월간카드 자동화
134.사례44. 유치원 - #4.유치원 카드 한 장이 저녁 식탁의 대화가 되는 순간
133.사례44. 유치원 - #3.“잘했어요”보다 부모가 오래 기억하는 말, 선생님의 한 줄 관찰입니다
132.사례44. 유치원 - #2.“24명 편지를 언제 다 써요?” 선생님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에 답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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