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 잉크는 ‘굳어 있는 것 같은데 글씨를 쓰면 흐르는’ 물질이라고 설명하곤 한다. 이를 단순한 마술이 아니라 시간·속도에 따라 내부 구조가 달라지는 유체의 거동으로 이해하면 많은 필기 문제를 분석할 수 있다.
뉴턴 유체와 비뉴턴 유체
잉크가 액체라면 물처럼 항상 똑같이 흘러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다. 물을 컵에서 저을 때는 젓는 속도가 달라져도 점도의 변화가 작은 편이지만, 케첩이나 일부 젤은 처음에 잘 흐르지 않다가 흔들거나 짜면 부드럽게 나온다.
젤 잉크는 후자에 가까운 행동을 하도록 설계할 수 있다. 다만 케첩과 젤펜 잉크의 세부 물성이 같다는 뜻은 아니다.
필기구 내부에서는 오랫동안 세워 두었을 때 무거운 백색 안료가 가라앉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반면 종이와 볼이 접촉해 회전하는 순간에는 잉크가 아주 좁은 틈을 지나야 한다. 정지 시 안정성과 필기 시 유동성이 충돌하는 요구 조건처럼 보이지만, 점도 조절 성분과 입자 분산 기술을 조합하면 두 조건을 어느 정도 양립시킬 수 있다.
물이나 묽은 용액은 일정한 온도에서 전단률이 달라져도 점도가 거의 일정한 뉴턴 유체의 예로 자주 다뤄진다. 반면 젤 잉크는 전단률이 증가할 때 겉보기 점도가 낮아지는 전단박화 거동을 보일 수 있다.
필기가 멈춘 때에는 안료가 침전하지 않게 구조를 유지하고, 볼이 움직이는 순간에는 유동 저항을 낮추는 방식이다.
실제 젤 잉크는 전단박화 외에도 항복응력, 틱소트로피, 점탄성 같은 특성을 나타낼 수 있다.
어느 현상이 지배적인지는 제품 처방에 따라 다르므로 단일 공식만으로 모든 펜을 설명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단순한 유변학 모델
공학적으로 전단응력 τ는 유체 층을 옆으로 미는 힘을 면적으로 나눈 값(Pa), 전단률 γ̇는 이웃한 층 사이의 속도 기울기(s⁻¹)다.
겉보기 점도 ηₐ=τ/γ̇(단위 Pa·s)는 전단응력과 전단률을 연결한다. 거듭제곱 법칙 τ=Kγ̇ⁿ에서 K는 점조도 계수이고 n이 1보다 작으면 전단률 증가와 함께 겉보기 점도가 내려간다.
이 모델은 실측 곡선을 근사하는 도구이지, 특정 제품의 미공개 처방을 밝혀내는 식은 아니다.
예를 들어 개념적으로 n=0.5라고 가정하면 전단률을 100배 높였을 때 겉보기 점도는 100^(n−1)=0.1배로 줄어든다.
숫자는 설명을 위한 가상 계산이며 사쿠라·시그노·Hopk의 측정 결과가 아니다. 또한 볼펜 끝의 유동은 단순한 균일 전단 흐름이 아니라 좁은 곡면 간격의 윤활, 종이 접촉, 공기 노출이 겹치므로 계산값을 실제 선폭에 곧바로 대입할 수 없다.
거듭제곱 법칙은 전단응력 τ와 전단률 γ̇를 τ=Kγ̇ⁿ으로 표현한다. 여기서 n<1이면 전단박화적 경향을 뜻한다. 이 모델은 일부 구간의 측정값을 간결하게 나타내는 경험식이며, 정지 후 회복과 항복현상까지 예측하지는 못한다.
일부 젤 잉크에서는 낮은 전단률의 높은 점도와 높은 전단률의 낮은 점도를 동시에 설명하기 위해 Carreau 계열 모델이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제품별 회전 레오미터 자료가 없다면 파라미터를 추정해서 실제 물성처럼 제시해서는 안 된다.
작은 볼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
작은 글씨에서 시작 획이 끊기는 이유도 이 관점으로 살펴볼 수 있다.
펜촉을 종이에 닿게 하는 순간에는 잉크 내부의 미세구조가 아직 충분히 깨지지 않았을 수 있고, 볼의 회전 속도가 올라가면 토출이 개선될 수 있다.
반대로 지나치게 빠른 속도에서는 잉크 공급이 이동량을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필압·각도·속도를 동시에 조절해야 하며, 세 요인 중 하나만 바꾼 시험으로 전 원인을 설명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전단박화’와 ‘시간 의존적 회복’은 다른 개념이다. 전단박화는 같은 조건에서 더 빠르게 변형할수록 겉보기 점도가 낮아지는 성질이고, 틱소트로피는 일정한 전단을 가한 뒤 멈췄을 때 구조가 시간에 따라 다시 회복되는 현상이다.
실제 제품에서 둘을 분리하려면 회전식 점도계로 전단률을 올렸다 내리는 시험과 일정 전단 후의 회복 시험을 실시해야 한다.
볼펜촉은 금속 볼과 소켓 사이의 작은 틈을 통해 잉크를 전달한다.
볼이 회전하면서 액체막을 끌고 나오고, 그 막의 일부가 종이에 전달된다. 이 과정은 마찰·접촉력·속도·습윤성을 동시에 받는다. 단순히 볼 직경이 작은 펜이 가늘게 나온다고 확정할 수 없는 이유다.
잉크가 잘 나오지 않는 경우 펜촉이 마른 문제뿐 아니라 비정상적인 필기 각도, 너무 낮은 접촉력, 볼 회전 불량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특히 자동 필기기에서는 Z축 명령값을 동일하게 설정해도 펜 구조와 고정부 탄성에 따라 실제 접촉력이 달라진다.
그래프를 해석하는 주의점
문서에 넣는 유변학 곡선은 전단률이 증가하면서 점도가 감소하는 전형적인 비뉴턴 유체의 개념을 나타낸다.
잉크 제조사들의 공식 측정값이나 글소담 실험 결과가 아니다. 실제 값은 동일한 시험 온도와 측정 장비에서 획득해야 비교 가능하다.
이러한 측정이 가능하다면 그래프 하나보다 시간 의존성을 함께 조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기 직후 원래의 구조가 얼마나 빨리 회복되는지가 잉크 누출과 다음 획의 시작 안정성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잉크 모델링의 경계
비뉴턴 유체에서는 점도라는 한 숫자를 표기하기 어렵다. 동일한 잉크도 전단률, 온도, 측정 시간에 따라 서로 다른 겉보기 점도를 나타낼 수 있다.
제품 간 점도를 비교하면서 측정 조건을 생략한 수치를 제시하면 기술적 의미가 거의 없다. 실험 보고에는 장비 형식, 측정 지오메트리, 온도, 전단률 구간과 반복 횟수를 포함해야 한다.
볼펜촉의 윤활 문제도 유동과 분리할 수 없다. 볼 표면에서 형성되는 얇은 액체막은 마찰과 잉크 전달에 관여한다. 너무 낮은 점도는 잉크 누출 또는 번짐을 유발할 수 있고, 너무 높은 점도는 볼의 회전 저항과 토출 불량을 만들 수 있다. 목표는 점도의 최소값이 아니라 적절한 작동 범위다.
틱소트로피를 조사하려면 충분한 전단을 가한 다음 정지 상태에서 구조가 얼마나 회복되는지를 시간에 따라 측정할 수 있다.
필기의 첫 획과 긴 선 중간의 감촉이 다른 현상이 이러한 구조 변화와 관련될 수 있지만, 이는 별도의 실험 없이는 원인으로 확정할 수 없다.
기계 필기 속도를 비교할 때 설정값인 이동 속도와 실제 펜촉 속도의 차이도 기록해야 한다. 작은 글자에서는 방향 전환과 가속·감속의 비중이 높아 장비가 정속 구간에 충분히 도달하지 못할 수 있다.
짧은 선에서만 끊김이 발생한다면 속도 명령보다 가속 프로파일과 시작 접촉 조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고 문헌 및 확인 자료
[R4] National Museum of Nature and Science Japan, Ballsign GB280 industrial technology archive. https://sts.kahaku.go.jp/sts/detail.php?no=113711620067
[R10] Sakura Color Products, 100th Anniversary History (gel ink technology). https://sakuracraypas.com/100th-anniversary/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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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젤 잉크의 전단박화와 볼펜촉 유체역학 #5)
158.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TiO₂는 어떻게 검은 종이를 하얗게 만들까 ? #4)
157.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0.5mm와 1.0mm 사이, 최적의 펜굵기는 ? #3)
156.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수정액에서 젤펜으로, 흰 필기구의 탄생 #2)
155.글소담 - 쉬어가기 (화이트펜 - 흰 글씨를 쓰기까지, 스무 번이 넘는 실험의 기록 #1)
154.사례47. 빼빼로데이 - #6.호텔·게스트하우스 시즌 이벤트, 작은 비용으로 만드는 환영 메시지(최종)
153.사례47. 빼빼로데이 - #5.학생마다 다른 응원 문구, 작은 학원에서 가능한 이벤트
152.사례47. 빼빼로데이 - #4.직원 100명에게 같은 선물, 그러나 각자 다른 손글씨 메시지
151.사례47. 빼빼로데이 - #3.11월 11일, 단골 고객에게 전하는 작지만 특별한 감사
150.사례47. 빼빼로데이 - #2.카페 이벤트, 단골이 기억하는 작은 선물의 비밀
149.사례47. 빼빼로데이 - #1.과자보다 오래 남는 한 장의 손글씨 카드
148.사례46. 펫미용실 - #6.좋은 아이디어도 직원이 쓰지 않으면 서비스가 아니다(최종)
147.사례46. 펫미용실 - #5.단골이 되는 순간, 카드는 ‘기억의 기록’이 된다
146.사례46. 펫미용실 - #4.노령견과 예민한 아이에게 프리미엄은 ‘천천히’다
145.사례46. 펫미용실 - #3.첫 미용은 잘 자르는 것보다 ‘좋게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
144.사례46. 펫미용실 - #2.미용이 끝난 뒤, ‘예쁘게 됐어요’에서 한 걸음 더
143.사례46. 펫미용실 - #1.처음 온 아이를 얼마나 기억하고 있나요?
142.사례45. 팝업스토어 - #6.대기번호 하나로팝업 이벤트 전체를 연결한다면(최종)
141.사례45. 팝업스토어 - #5.마지막 날, 3,000개의 번호가다시 살아난다면
140.사례45. 팝업스토어 - #4.대기표를 왜 집까지 가져가게 될까?매일 당첨번호를 발표한다면
139.사례45. 팝업스토어 - #3.Excel 한 파일이면3,000개의 번호도 어렵지 않습니다
138.사례45. 팝업스토어 - #2.문장은 같아도 3,000장이모두 다른 카드가 되는 이유
138.사례45. 팝업스토어 - #1.대기번호표, 꼭 버려지는 종이여야 할까요?
137.사례44. 유치원 - #7.한 반 24명 월간 운영 예시 (최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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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사례44. 유치원 - #2.“24명 편지를 언제 다 써요?” 선생님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에 답해봤습니다
131.사례44. 유치원 - #1.매달 이런 카드가 온다면, 부모는 버릴 수 있을까요?
130.사례43. 보험 고객관리의 기술 - #5.두 번 상담했는데 계약은 0건이었습니다 - A5 450자
129.사례43. 보험 고객관리의 기술 - #4.“제 담당자가 지금 누구죠?” - A4 900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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